메뉴 닫기

범사에 감사하며 (엡 5:15-21)

오늘 읽은 성경 말씀 가운데 에베소서 5장 16절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해 주고 있는데요. 세월을 아낀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세월을 아낄 수 있는 것일까요? 돈이나 물건 같은 경우는 사용을 하지 않고 간직해 두면, 잘 저장해 두면, 아낄 수가 있을 것인데, 또 음식 같은 것도 먹지 않고, 나중을 위해서 남겨놓는 경우가 있잖아요? 정말 맛있는 것 숨겨놓고, 이렇게 나중을 위해서 그렇게 아껴 먹을 수가 있겠지만, 시간은 어떻게 아낄 수 있는 것일까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그냥 흘러가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시간이잖아요? 그러한 시간은 어떻게 아낄 수 있는 것일까요? 돈이나 물건처럼 음식처럼 우리가 사용하지 않으면 아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정반대입니다. 시간은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사용하는 게 아끼는 것이죠. 우리가 어떻게 하든, 그 시간을 우리가 잘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시간은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그 시간이 다 흘러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는 방법, 세월을 아끼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시간을 내게 주어진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이죠.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죠. 가치 있게 사용할 때, 그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학생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시험을 앞에 둔 그런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까? 학생들이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시간이 주어져 있는데, 그 시간에 어떤 사람들은 놀고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결국 누가 시간을 아낀 사람이 되는 겁니까?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되게 되는 것이죠. 나중에 대학 입시를 한다든가, 여러 가지 결정을 해야 되는 일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놓여지게 되는데, 누가 성공할 수 있습니까? 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까? 누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 시간에 정말 그 시간을 아주 철저하게 잘 관리하고 활용해서, 그래서 그것을 잘 활용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법칙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겁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지 못하는 것이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는 것은 무엇인가? 똑같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어도, 그 시간을 베짱이처럼 그냥 흘려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시간을 그냥 낭비해 버리는 것이 되겠지만, 그 시간을 아끼는 것은 무엇인가? 그 시간에 의미 있는 일, 가치 있는 일, 정말 중요한 일들을 할 때에, 시간을 우리가 절약할 수 있는 것이고, 아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나 다 시간을 잘 아껴야 하겠지만, 그 누구보다도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더욱더 세월을 아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서 살려주셨다고 한다면, 우리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다고 한다면, 그 은혜를 우리가 기억하면서, 이제는 우리의 삶을 덤을 사는 것 같이, 덤으로 사는 인생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되고, 세월을 아끼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에베소서의 말씀 가운데서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하고 있는 이유가 있는데요. 왜 우리가 세월을 아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가 어떤 시기인가? 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기는 악한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세월을 아끼지 아니하면, 그냥 그 세월을 허비해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죠.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악한 세상이어서 우리가 이 악한 세상의 방식대로 따라 살다가는 의미 없게 살다가 결국 망해버리는 것이고,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대로 살다가는, 결국 우리가 의미 없는 인생을 살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허비해 버리고,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들을 우리가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늘 이 에베소서의 말씀 가운데서, 세월을 아끼는 삶을 살아라. 그러니까 정말 긴장해서, 하나도 이 세월을 허비하지 아니하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서 세월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이 정말 빠르죠?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2024년에 반절의 마지막 날이요. 전반기가 흘러가는 마지막 날입니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흘러서, 순식간에 반년이 지나가 버렸어요. 정신 차리지 못하고, 우리가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못하는 그 상황 가운데, 다른 사람들은 엄청난 일들을 이루어내고, 많은 일들을 해내버렸지만, 그냥 어영부영하다가, 가만히 있다가 반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후딱 지나가버리는 그 시기를 우리가 맞이하게 된 것이죠. 따라서 우리들을 향해서 주시는 이 성경의 권면을 분명히 잘 기억하면 좋겠는데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세월을 아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면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읽은 에베소서 5장 17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우리가 세월을 아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길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들을 행하는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그러한 뜻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게 바로 “세월을 아끼는 일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그냥 내 마음대로, 내가 편한 대로 살아가는 게, 그게 세월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고, 지혜롭게 우리가 어떻게 세월을 아끼며 살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되고, 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그것은 우리가 방탕한 삶이 아니라, 정말 아무 의미 없이 아무 목적 없이, 그냥 될 대로 되라고 하면서 사는 그런 방탕한 삶이 아니라, 성령님의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성령님의 충만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인도를 받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우리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성령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는 것이죠. 너는 그렇게 미워하며 살면 안 된다. 말씀해 주고 계시는 거,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라”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거죠. 하나님께서 주의 성령께서 우리들의 심령 가운데 들려주시는 선하고 거룩한 그 말씀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선한 길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세월을 아끼는 것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성령님에 의해서 충만한 삶을,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에베소서 5장 19절에서부터 20절에서는 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 충만한 삶이 무엇인가?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소개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찬송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이고,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고, 그렇게 우리가 늘 감사하며 찬송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세월을 아끼는 삶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늘 찬송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뻐하며 사는 삶이고,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사는 삶을 사는 게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지난 한 주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번 되돌아보았으면 좋겠어요. 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으로 살았는가? 아니면 원망과 불평 가운데 살았는가? 근심과 걱정 가운데 살았는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만일 우리의 삶이 근심과 걱정 속에서, 정말 절망 가운데 살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세월을 허비한 삶을 살았구나, 내가 원망하고 불평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시간을 허비하며 살았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오늘 이 아침에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단단하게 결심하면서, 내가 시간을 허비하면서 살 게 아니라, 늘 찬송과 감사의 삶, 세월을 아끼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아무 쓸데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삶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근심하며 염려하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여러 가지 일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러한 일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가 제일 쉽게 반응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늘 근심하고 염려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들려주시는 그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부터 31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우리의 삶 가운데 여러 가지 근심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고통이 있을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것이죠.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장애물이 내 앞에 있을 수가 있는 것이죠. 도무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그런 것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다가올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근심과 염려와 걱정 가운데 절망하고 울고 있을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걸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고 계시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저 밭에 있는 들풀보다도, 저 공중의 새보다도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저 새들도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신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더 사랑하시며, 얼마나 더 보호해 주시고, 얼마나 더 인도해 주시겠는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근심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라고 권면해 주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시간을 근심과 걱정 가운데 절망 가운데 보낼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찬송하며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들을 회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삶을 보냅니까? 원망과 불평 가운데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원망과 불평이라고 하는 것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무너지게 만드는 영적인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망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불평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아무것도 안 돼요. 하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제일 쉽게 반응하는 것이 내 주변의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바다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들은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먹을 것이 없을 때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과거만을 생각했습니다. 마실 것이 없을 때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원망과 불평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그들은 그렇게 시간을 허비해버리고 만 것이죠. 그런데 건강한 믿음은 무엇인가? 건강한 믿음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건강한 믿음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부터 18절의 말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이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에요? 그렇게 있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울고 있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에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지, 절망과 슬픔 속에서 근심과 염려 가운데서, 원망과 불평 가운데서 인생을 허비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없는 삶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찬송과 감사가 우리들의 입술 가운데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해 주었는데요. 우리는 언제 감사해야 됩니까? 감사해야 될 때가 언제입니까? 물론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좋은 일이 있을 때 그것이 내 힘과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우리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결혼하게 되었을 때, 아기를 얻게 되었을 때, 직장에 취직하게 되었을 때, 또한 우리의 생일을 맞이하고,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이 생길 때, 또 집을 마련하기도 하고, 차를 사기도 하고, 좋은 일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넘쳐날 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할 거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 가운데서도 늘 감사해야 되는 것이죠. 매일매일 이 감사할 일 제목들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전도서와 아가서의 본문을 가지고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었는데, 그 전도서의 말씀의 구절을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더라고요. 전도서 5장 19절 말씀에 보니까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땀을 흘리면 흘린 만큼, 우리가 수고하면 수고한 만큼 얻는 것이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라고 기억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반복이 되고 일상이 되어버리면 그게 축복인 줄 몰라요. 우리 자녀들이 아빠, 엄마의 밑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 가운데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인데, 장난감을 안 사준다고 행복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거 해주지 않는다고 행복하지 않고 그게 말이 되냐? 이 말이에요. 그냥 아빠가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엄마가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매일매일 베풀어주는 그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해요.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있다고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종종 일상화되어 버린 하나님의 축복은 마치 축복이 아닌 것처럼 착각해 버릴 때가 많이 있는데요. 그게 아니라 우리는 언제 감사해야 되는가? 아무 일이 없어도 감사해야 되는 거죠. 아무 문제가 없어도 아무런 좋은 일이 없다고 할지라도 감사해야 하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 우리는 언제 감사해야 되는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일들도 정말 많이 발생합니다.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었을 때, 암이 우리들을 찾아오게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었을 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치고, 사업이 망하게 되고, 직장에서 쫓겨나가게 되고, 또 믿었던 사람들에게서부터 배신을 당하는 일들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는 늘 벌어지지 하지만, 그런 힘든 일이 있으면, 그때는 원망해도 됩니까? 불평해도 됩니까? 근심하고 또 절망하며 염려해도 되는 건가요? 아니요. 그때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면, 그 순간에도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 우리는 그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감사해야 됩니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그것은 많은 것이 없어져도 남아있는 게 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의미가 맞습니다. 교통사고를 났지만,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망가지기는 했지만,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감사할 수 있는 것이고, 한쪽 발이 부러졌다고 할지라도, 다른 쪽 발은 남아 있으니까 감사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없어진 것보다 남아있는 것, 정말 잘못된 것보다도 유지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고 하면 감사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도 합니다. 나는 이렇게 힘들지만 사실은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거든요. 우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계 상위 몇 프로 안에 드는 다 부자들이라고 그래요. 다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정말 힘들어 보이지만, 그러나 나보다도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또 감사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감사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의 우리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이죠. 로마서 8장 38절에서부터 39절의 말씀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모든 것이 다 끊어져 버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사실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사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는 그걸 잘 이해를 하지 못해요.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조금도 따라가기가 어려워요. 마치 꼬마 아이가 방적식 수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미분 적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으로 우리의 짧은 머리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몰라요. 마치 부모님이 예방주사를 놓으러 아이를 데리고 간다고 한다면, 꼬마 아이가 그 예방주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놓으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랑해 주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일어난 것이라고 믿는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감사할 일이 없는 게 아니라, 감사할 것을 볼 수 없는 믿음의 눈이 없는 것이 우리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입니다. 한 금년의 반절을 지내면서 이제 다음 주는 우리가 맥추감사주일을 앞에 두고 있는데요. 농사를 짓기 때문에 우리가 이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동안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는가를 다시 한번 헤아려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하는 그런 믿음의 시간들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우리로 하여금 기쁨을 넘치게 만들지만, 근심과 염려는 있는 것마저도 빼앗아버리고 기쁨을 빼앗아버리고 불평과 원망은 있는 관계마저도 악화시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그 사랑을 오늘 또 하나씩 하나씩 헤아려보며, 우리들의 삶 속에서 감사와 찬송이 넘쳐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신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의 끈을 놓지 아니하신 그 주님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바로 우리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 울부짖으심을 외면해 버리신 것이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인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시면서까지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사랑해 주시고, 그 사랑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놀라운 사랑을 우리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지내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씩 하나씩 헤아려보며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