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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와 평강과 희락 (롬 14:13-23)

오래간만에 로마서의 말씀을 계속해서 살펴보게 됐습니다. 우리 나은이가 아주 예쁜 목소리로 성경 말씀을 잘 봉독해 주었는데요. 오늘 좀 비교적 긴 말씀인데, 이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그 중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혹시 파악하셨습니까? 바울 사도가 지금 로마 교회를 향해서 이 말씀을 들려주고 있는데,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 중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 성경 말씀을 읽는 가운데 파악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벌써 성경을 읽은 지가 어느 정도 시간이 되기 때문에 흘렀기 때문에 잘 기억이 안 나실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다시 한번 읽어드릴 테니까, 성경 말씀을 한번 보시면서, 이야기를 이 말씀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가? 전하고자 하는 중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로마서 14장 13절부터 23절까지 제가 다시 한번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로마서 14장 13절부터 23절까지 다시 읽어드렸는데요.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 가장 중요한 메시지, 말하려고 하는 그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 감이 싹 오셨습니까? 아니면 이 말도 했다가 저 말도 했다가 여러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약간 혼란스럽습니까? 많이 혼란스러우실 것 같아요. 어쩌면 이 본문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아마 번역의 문제가 훨씬 더 클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좀 제대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번역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먹는 걸 이야기했다가, 어떤 때는 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이, 그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좀 쉽게 이해하라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풀이해서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한 것을 한번 보여드리려고 하는데요. 한번 보여주시죠. 여기서 파란색으로 된 글씨는 제가 추가적으로 덧붙인 내용이고요. 새 까만색, 빨간색은 성경 본문의 말씀을 좀 풀어서 해설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14장 13절부터 보면 “그러니까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 같은 것을 다른 형제자매들 앞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아예 비판 자체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서로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은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 안에서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그 어느 것도 그 자체로 더러운 것은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니까, 무엇이든 먹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더럽다고 느끼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그게 더럽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만일 믿음의 형제나 자매 중에 그대가 먹는 것으로 인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대의 먹는 행동은 배려가 없는 것입니다. 그대는 아무것이나 먹어도 된다는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행위이며, 사랑이 없는 행위입니다.

먹는 일로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내어주시면서까지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대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 악한 도구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옳다고 생각해서 행동한 것이 결국 형제를 무너뜨리면, 그게 선한 도구이겠습니까? 악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거나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까짓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건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살아가는가? 어떻게 평화로운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기쁨을 누리며 살 것인가? 이런 것들입니다. 무얼 먹고 안 먹고 이런 걸로 서로 다투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만 부리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과 우호적으로 지냅시다. 서로 싸우려 하지 말고 서로 세워줍시다. 비난하고 싸우면서 서로 무너질 게 아니라, 서로 배려하면서, 더 성장해 나가도록 돕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먹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망치면 안 됩니다. 물론 모든 음식이 다 깨끗합니다. 다 먹어도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꺼릴 게 없습니다. 하지만 먹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차라리 고기를 먹지 마십시오. 차라리 포도주를 마시지 마십시오. 먹는 게 다른 믿음의 형제들이나 자매들에게 걸림이 된다면, 같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넘어지게 만드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이런 음식들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그건 그대와 하나님 앞에서만 가지고 계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그런 잘못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이번에는 음식 문제로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권면합니다. 음식 문제로 확신이 없이 행동하지 마십시오. 먹는 것은 잘못일까 아닐까?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먹는다면 그건 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믿음 가운데 행동한 게 아니니까요. 믿음은 믿음에서 나오지 않는 행동은 다 죄입니다.”


제가 풀이해서 설명해 드렸는데, 어느 정도 좀 내용이 마음속에 좀 잡혀집니까? 네 그럴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이 로마서 14장 13절에서부터 23절의 말씀은 당시 로마 교회 안에서 먹는 문제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주시는 바울 사도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13절에서부터 22절까지는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 이것을 먹어도 되고, 저것을 먹어도 되고, 우리 크리스천들은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주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13절부터 22절까지, 너희가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거 괜찮다. 너희들의 말이 맞다. 모든 음식이 다 깨끗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까, 마음대로 먹어도 되는데, 그런데 너희가 마음대로 먹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그렇다고 한다면 차라리 먹지 않는 게 낫지 않겠는가?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면, 너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로 하여금 잘못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너희들의 행동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해 주시는 말씀인 것이죠.


23절은 마지막에 음식 문제에 대해서 조심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이것이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다른 사람들 눈치 보면서 그냥 그렇게 믿음이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할 것이 아니라고 권면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어느 정도 좀 이해가 되셨는지 모르겠어요.

당시 로마 교회는 이 음식을 먹는 문제 때문에 상당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당시의 우상에게 바친 음식들이 있었는데요. 시장에 나와서 파는 모든 음식들은 대부분 다 우상에게 먼저 들여진 다음에 나와서 파는 음식들이었습니다. 특별히 고기들 이런 것들은 다 우상에게 먼저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시장에 나와서 팔게 되는 음식이었는데, 이러한 음식들에 대해서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질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과연 우상에게 먼저 받쳐줬던 이 음식을 고기를 우리 성도들이 먹어도 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는가?”라고 하는 이 문제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이죠. 우상에게 먼저 들여줬던 음식 먹어도 되나요? 안 되나요? 제사 음식 우리가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의견이 둘로 나뉘어졌어요. 먹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상에게 바쳤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우리가 먹는다고 하면 우리가 우상을 섬기는 일에 동참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사람들인데, 하나님만 섬겨야 되는 사람들인데, 우상에게 바쳐진 그 제사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가 우상숭배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니까, 이러한 음식은 먹지 말아야 된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의견에 뒷받침을 해주는 성경 구절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의 이야기인 것이죠.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다음에 그곳에서 왕의 진미를 먹지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왕의 진미 우상에게 바쳐지는 음식이요.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한 것까지 포함되어 있는 그 왕의 그 만찬들을 먹으라고 내놓았을 때, 이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결심을 하고 먹지 않겠다고 한 것이고, 채소만 먹겠다고 한 이야기가 다니엘서에 있는 것이죠. 따라서 이 로마 교회 성도들 가운데 한 부류의 사람들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그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결정을 한 것이죠.

하지만 로마 교회 내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 제사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은 그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만 있는 것이지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없다. 우상에게 바쳐졌지만, 우상이 그것을 어떻게 한 것이 아니라 우상 자체가 없는 것이다. 다른 신은 없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만 있는 것이 우상에게 바쳐진다고 한들, 우상이 뭐 어떻게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냥 음식일 뿐이다”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주어진 모든 것이 누구에게서 온 것인가?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하는 확신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기가 있다고 한다면 음식이 있다고 한다면, 그 고기와 음식을 누가 줍니까? 우상이 준 게 아니에요. 그런 다른 신이 준 게 아니라,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은 우상이 준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우리가 감사함으로 먹으면 된다고 하는 그런 입장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4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함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기록해 놓은 것이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이니까, 무엇을 먹어도 괜찮다고 하는 입장입니다.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봤는데 음식을 먹어야 합니까 먹지 않아야 합니까 먹어도 됩니까? 먹으면 안 됩니까? 먹어도 돼요. 왜? 맛있으니까? 어쩌면 안 먹는다고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믿음이 있어 보이고, 더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우리가 잘 이해한다면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다 모든 음식이 다 깨끗하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먹을 수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먹지 말아야 된다고 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다 틀렸느냐 하면, 다 틀린 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먹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꺼림칙한 겁니다. 이것을 우상에게 바쳤다고 하는 그 사실 때문에, 우상이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한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이 우상에게 주었던, 우상에게 바쳤던 그 음식이기 때문에, 만일 내가 그것을 먹는 것은 내가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은 아닐까? 찜찜한 마음들이 있었던 것이고, 그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만 섬겨야 된다고 하는 그 마음만큼은 그래도 순수하고 고귀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서로 양쪽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고 서로 무시하면서 문제가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많은 분량을 차지한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우상에게 바쳐진 그런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주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해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너희들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거 성경적으로 볼 때 괜찮은 생각이다. 하나님께서 주셨으니까, 다 깨끗한 것이다 인정하면서, 그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 때문에, 내가 마음대로 먹어버리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20절의 말씀 다시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요. (그림으로 된 파일을 한번 보면 좋겠습니다.) 먹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망치면 안 됩니다. 물론 모든 음식이 다 깨끗합니다. 다 먹어도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꺼릴 게 없습니다. 하지만 먹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14장 21절 차라리 고기를 먹지 마십시오. 먹을 수 있지만, 차라리 포도주를 마시지 마십시오. 먹는 게, 다른 믿음의 형제들이나 자매들에게 걸림이 된다면, 같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넘어지게 만드는 일들은 하지 말라고 하는 권면의 말씀을 해주고 있는 겁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그 확신 때문에 내가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 행동 등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고, 다른 사람들이 시험에 걸리고 넘어진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들을 생각해서 배려하면서 행동해야 되는 것이지, 내가 옳다고 하는 그 생각만으로 아무거나 다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겁니다.


로마서 14장 18절의 말씀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만 부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중요한 게 뭐예요? 내가 옳다고 하는 그 확신 때문에 그래서 마음대로 일을 해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그 행동으로 인해서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는지, 넘어지는 사람은 없는지, 헤아려 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믿음을 가져야지, 내 옹고집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14장 17절의 말씀에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먹는 거나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까짓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건,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기쁨을 누리며 살 것인가? 이런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이지, 그런 정말 중요한 문제는 내 팽개쳐버리고, 무얼 먹고 안 먹고 이러한 일들로 사소한 것으로 서로 다투지 말라고 권면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우리가 옳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라고 하는 게, 오늘 우리 로마서 14장에서 들려주는 말씀인데요. 오늘 이번 한 주간 동안 우리 성도님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혹시 나의 행동으로 인하여 나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했던 일들 때문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넘어지는 사람들은 없는지, 우리 자신의 행동들을 잘 살펴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론 우리가 타협할 수 없는 게 있어요. 신앙생활에서 타협할 수 없는 게 뭐죠? 하나님이 아니라 알라를 믿어야 된다. 타협할 수 있습니까? 없어요 하나님 안 믿어도 되고 부처님 믿어도 된다. 타협할 수 있나요? 안 되죠 그런 주장을 교회에서 용납할 수는 없을 겁니다. 교회 내에서 예수님을 안 믿어도 된다. 그런 주장을 우리가 용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아주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그리고 그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는다고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을 용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이런 일리도 있고 저런 일리도 있는, 그래서 별로 중요하지 아니한 것 먹는 것 같은 문제들, 피아노를 이쪽에 놓아야 될까? 이쪽에 놓아야 될까? 강대상을 중앙에다 놔야 되는가? 저 가상으로 놔도 되는가? 십자가를 달아도 되는가? 달지 말아야 되는가? 이런 문제들 가지고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야기,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하는 것을 전문 용어로 뭐라고 그랬죠? 예전에 한번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아디아포라”입니다. 생각이 나십니까? “아디아포라”의 문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하는 문제로, “서로 싸우고 다투고, 서로 마음을 상하는 일들을 하지 말아야 된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주변적이고 그냥 우리의 전통일 뿐이고,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에 불과한 것인데, 그러한 것이 마치 금과옥조와 같은 것으로 생각이 돼서, 그것 때문에 서로 다투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 것 때문에 교회가 다투기도 하고 싸우는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특별히 율법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면, 정말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한 거라고 생각이 돼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원하기는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고 싸우고 또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면서 나의 생각이 나의 옳다고 하는 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오히려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늘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다른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이런 일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그리고 다투고 교회가 갈라지는 경험을 너무나도 많이 봤어요. 제가 예전에 목회하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토요일날 결혼식을 했어요. 결혼식을 하는데 참 결혼식이 얼마나 은혜스러운지 너무나도 좋고 너무나도 행복한 결혼식을 잘 마치고, 저는 다음 날이 주일이기 때문에, 내일 주일 준비를 하기 위해서 목양실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또 우리 교우들이 결혼식 다 이제 정리하고 하면서 내일 주일을 위해서 준비하겠다고, 막 그러는 사이에, 갑자기 어떤 한 분이 헐레벌떡 헐레벌떡 뛰어들어와서 저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막 그러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그랬더니 지금 교우들 사이에서 서로 싸우고 난리가 났다는 거예요. 뭐 때문에 싸웠느냐? 그랬더니, 신부의 아버지 어머니는 토요일날 결혼식에 했었던 그 아름다운 그 꽃을 주일날에도 그대로 놔둬서, 예배 때 정말 분위기 좋게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하지만 어떤 한 분이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결혼식에 있었던 꽃을 주일날 예배 때 쓰면 절대로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분의 마음은 이거예요. 한 번 썼던 꽃인데 재활용해서 하나님께 바친다고 말도 안 된다. 하나님이 거지냐? 말도 안 된다. 꽃을 사용해도 됩니까? 안 됩니까? 다행히 문제는 잘 해결됐습니다마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신 분은 나중에 따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또 한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예배 시간에 어떤 성도님이 너무 찬송이 좋아서 박수를 치면서 찬송을 부른 거예요. 그랬더니 어떤 분이 예배 시간에 경건하지 못하게 왜 박수를 치느냐? 난리가 난 거예요. 교회가 두 조각이 나고 박살이 났어요. 나중에 이것도 잘 해결이 됐습니다. 어떻게 해결됐는지 궁금하신 분은 나중에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할 이야기가 많은데, 방출을 안 해서 그런데요. “우리 목사님이 나중에 우리 교회 이야기도 나중에 하겠구나”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다음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 옳은가? 나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요. 이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 사람의 말이 있는 것 같고, 다 성경적인 근거가 있고 다 일리가 있어요. 그럴 때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그냥 밀어붙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로마서 14장에서 들려주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면, 네가 옳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옳다고 확신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너와 하나님 사이에서만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을 만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한다고 하면, 그것을 그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말고, 장애물을 놓지 말고 걸림돌을 놓지 말고, 그 사람들을 배려하며, 혼자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5절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런데 만일 믿음의 형제나 자매들 중에 그대가 먹는 것으로 인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대의 먹는 행동은 배려가 없는 것입니다. 그대는 아무것이나 먹어도 된다는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행위이며 사랑이 없는 행동입니다. 먹는 일로 다른 사람들을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내어 주시면서까지 사랑한 사람이 아닙니까? 배려하는 게 믿음이고, 배려하는 게 성숙한 믿음의 태도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든 말든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으로 대화하며 아끼며 배려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 메시지를 오늘 전하는데 마음에 불편함이 없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왜냐하면 우리 교회 성도들은 다 배려심들이 많은 성도님들이에요. 바울 사도는 지금 싸우고 있는 이 사람들을 향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 교우들은 성숙한 교우들이 많고, 남들을 배려할 줄 알고, 귀를 기울일 줄 알고, 그래서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그런 교우들이기 때문에, 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얼마나 참 부담스럽지 않고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원하기는 이것이 쭉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중간에 서로 싸우지 말고.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 됩니까? 내가 옳고 저 사람은 틀린 것 같은데, 내가 맞고 저 사람이 생각하는 건 잘못된 것 같은데, 왜 그런 사람들을 배려해야 됩니까? 로마서 14장 15절의 말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바로 그 사람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면서까지 구원해 주신 주님께서 사랑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우리는 배려를 해야 됩니까? 왜 우리는 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까? 그것은 왜냐하면 우리가 그 사람들을 향해서 비난하고 비판하고 정죄해 버리면, 오늘 우리들도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14장 10절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마지막으로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저 사람이 틀린 것 같은데, 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으면서, 우리가 살아가야 됩니까? 왜냐하면 주님께서도 우리들을 배려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행동한 것처럼 우리가 한 그대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행하신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지옥불에 처넣어도 아무 할 말 없는 사람들이에요. 악하고 이기적이고 나밖에 생각 못하는 우리들을 주님께서 심판해 버리시고 끝내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저와 여러분들에게 베풀어 주셨기에 오늘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14장 19절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과 우호적으로 지냅시다. 서로 싸우려 하지 말고 서로 세워줍시다. 비난하면서 싸우면서 서로 무너질 게 아니라 서로 배려하면서 더 성장해 나가도록 돕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옆 사람들에게 이야기합시다. 서로 배려하면서 삽시다. 이해하면서 지냅시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가정이 아빠 엄마가 옳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들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너무나도 괴로워하고, 안타깝게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자기주장만 옳다고 이야기하면서 서로 갈라서고 싸우고 치약을 위에서 짜면 어떻고 밑에서 짜면 어때요? 안타깝게도 그와 같은 교와 교우들이 성도들이 이렇게 하는 거, 저렇게 하는 거, 너그럽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하다가 갈라지고 상처 주고 고통 가운데 있는 그런 공동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원하기는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배려하고 사랑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희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셔서 내가 옳다고 하는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악하게 행하며 나의 옳음이 잘못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 저희들의 마음과 태도를 바꾸어 주옵소서 주님의 마음을 따라 살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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