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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하라 (시 106:48)

지금 우리가 시편의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고 있는데요. 지금 이번 벌써 세 번째 주간이 되겠습니다. 다른 때 성경을 읽는 것보다는 분량이 좀 줄어들었죠? 그래서 쉽기도 하고, 또 내용 자체도 시편이기 때문에, 얼마나 참 마음에 와닿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성경 말씀도 은혜스러운 말씀이고, 우리들에게 참 좋은 말씀인데, 특별히 시편의 말씀을 읽을 때, 참 깊이 공감이 되고, 마음을 울리는 그런 말씀들이어서, 지금 3주째 이제 시편의 말씀을 읽어나가고 있는데,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스톱하셨던 분들이 있어도, “과거에 읽지 못했던 것은 잊어버리고, 새롭게 다시 읽어나가자. 다시 읽어나가자.” 해가지고, 성경을 읽는 일에 온 교부가 함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시편의 말씀을 우리가 또 공부해 보려고 하는데요. 시편은 15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150편의 시편이 총 5개의 책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 보면 시편 제1권, 2권, 3권, 4권, 5권 이렇게 권수가 표시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1권은 1장에서부터 41장까지, 2권은 42장부터 72장까지, 3권은 73장에서 89장까지, 4권은 90장에서 106장까지, 그리고 마지막 5권은 107장에서부터 150장까지 이렇게 구분이 되어 있는데요. 이렇게 구분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해서 이렇게 구분해 놓았는지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각본이 끝날 때마다 공통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송축할지어다”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아멘”과 같은 말로 각 권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편의 내용들을 보면 다양한 종류의 내용들이 나온다고 했잖아요? 심지어 어떤 시편이 있습니까? 하나님 저 원수를 죽여주세요. 하나님 저 원수를 몰살시켜 주세요. 막 이런 저주의 시도 있고, 또 어떤 시편을 보면, 내 영혼이 낙망하고 슬퍼하고, 내 깊음 가운데, 흑암 가운데, 정말 고통 가운데 있다고 울부짖는 그런 내용들도 나오고, 인생의 여러 가지 감정들이 시편에 고스란히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 시편의 내용들이 그러나 한 권 한 권이 끝날 때마다 무엇으로 끝나는가?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송축할지어다. 이런 말로 끝나고 있다고 하는 점을 우리가 주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가 뭐죠? 할렐루야 할렐루야라고 하는 것은, “할랄”이라고 하는 말은 “찬송하다” “찬양하다” 이런 말입니다. 할랄. 할렐루야. “야”가 뭐냐 하나님을 “야”라고 그래요. 반말하는 것처럼 들립니까? 여호와라고 하는 말이 더 정확한 발음으로 하자면, 야훼라고 하는 말로 발음이 되는데, 그것을 짧게 하면 “야”입니다. 그래서 할렐루야 그러면, 하나님을 찬양하라가 되는 것이죠. 각 권의 맨 마지막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그리고 마땅한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의 기쁨이 같이 배가 되는 것이죠. 우리가 언제 기쁨이 생기는가? 언제 기쁨이 생겨요? 다른 사람들을 욕하고 비방하고 저 사람에 대해서 비난하는 말을 하면 기쁨이 생기던가요? 아니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욕하고 비난하고 저주하고 나쁜 말을 하고 욕하는 말을 하면, 우리들의 마음에 기쁨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참 마음이 아프고 쓸쓸해지고 여러 가지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남을 욕하고 비난하는 걸 통해서, 내가 기쁨이 생길 리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참된 기쁨은 어디서 생기는가? 사람들을 칭찬해 주고 찬양하고 좋은 말을 해주고 할 때, 그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이죠.


특별히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팀이 승리하면 그 승리한 것을 보면서 막 기뻐해요. 손흥민 선수 골 넣으면 하루 종일 행복해요. 이강인 선수 골르면 하루 종일 행복해요. 우리나라가 이번에 싱가포르라고 하게 될 텐데 언제 하죠? 6월 6일입니다. 이기면 또 기분이 좋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정말 축하해 주고 할 때 기쁨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사랑할 대상이 있고 칭찬할 대상이 있고 예배할 대상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는 겁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언제 기뻐요? 우리 아이들을 볼 때 기쁜 것이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언제 기뻐요? 손주들을 볼 때 기쁜 거죠. 저는 하나도 안 기쁜 것 같은데 우리 애가 이렇게 변했어요. 우리 손주가 지난주에는 뒤집지를 못했는데, 이번 주에는 뒤집었어요. 아니 그게 뭐가? 근데 그거 하나에 너무 기뻐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있으니까, 막 기뻐하면서 행복해지는데 우리가 사랑하고 칭찬하는 대상이 있으면 자꾸만 행복해지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고, 기쁨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 있는가? 자꾸 칭찬하고 축하해 주고 같이 즐거워하고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칭찬해 주시고, 칭송해 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엄청나게 기쁨이 생기는 길인 것이죠.


하지만 이 세상의 칭찬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것 같아서, 막 신나게 떠벌리고 막 마치 서울대를 갈 수 있는 것처럼, 아니면 뭐 아주 전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는 것처럼 막 떠들었는데, 나중에 보면은 별거 아니거든요. 나중에 가서는 자랑할 게 없어져요. 왜 우리 아이들이라고 하는 게, 참 어렸을 때는 기대를 많이 두지만, 그러나 점점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대와 소망들이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게 되는 거죠. 포기. 제 마음에는 어디까지 갔는가 우리 딸 기르면서 어디까지 갔느냐 하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줄 알았어요. 사라장보다도 뛰어난 아이라고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사라장은커녕, 안 되더라고요. 특별히 우리 아이가 오늘 아침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이런 우울증에 걸리고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그런 정도까지 가게 되었을 때, 그때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대와 소망들을 다 내려놓고 살아 있어 주는 것만도 감사하다. 세계 최고가 되는 게, 그래서 명성을 날리는 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그냥 이 아이가 웃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그 단계까지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단계까지 가게 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근데 이 세상의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의 것들은 그만큼 한계가 있고, 늘 부족하고 일시적인 것이고, 늘 우리의 기대와 소망을 배반하는 것이죠. 좋아했는데, 칭찬하고 우리를 기쁘게 해 줬는데, 결국에는 그 기쁨이 오래가지 못하는 겁니다. 영원하지 못한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쁨에 참된 기쁨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거예요. 왜?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되, 그 사랑하심이 변함이 없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기도 했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도 못했지만, 주님께서는 그것 때문에 우리를 내버리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끊임없이 사랑해 주신,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올리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누군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가장 온전한 기쁨이요. 찬양일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그것이 온전한 우리의 가장 완벽한 찬양이라고, 찬양과 기쁨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신자들은 너무나도 아쉬운 것이죠. 정말 참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찬양한다고 하면 기쁨이 넘치게 될 텐데,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과 비교될 수 없는 썩어질 것들, 망할 것들을 놓고서 좋아하는 이 불신자들이야말로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시편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배워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영원하신 하나님, 참되신 하나님, 변함이 없으신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가는 그런 삶을 우리가 이 시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매 순간순간마다 찬양과 기쁨이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스포츠를 엄청 싫어했어요. 제가 초중고등학교 시절 때는 지금보다도 더 뚱뚱하고 그리고 운동을 전혀 못해가지고 그래서 운동이라고 하면 제가 싫어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축구를 해도 뭐 야구를 해도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그러니까 하나도 기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지금은 스포츠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축구를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야구를 하는, 그러니까 그것이 기쁨이 되잖아요. 이런 기쁨이 있었는데 내가 그런 기쁨을 전혀 모르고 살았구나. 이 축구나 야구만 봐도 이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있는데, 손흥민이 잘하는 걸 보면, 하루 종일 행복한데, 그걸 모르고 지금까지 인생을 이렇게 살았다니, 너무나도 아쉽더라고요. 그런데 축구 정도가 아니라, 야구 정도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영원한 행복이요 소망인가? 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삶이 늘 기쁨이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이 이렇게 5권으로 구성된 것은 숫자적으로 모세 5경과 일치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모세 오경이라고 하는 것이 모세가 쓴 5개의 성경을 가리키는데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켜서 모세 오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율법서가 총 5권인데, 이 5개의 숫자와 일치하는 시편에 5권의 권이 있다. 시편을 5권으로 구성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 시편의 구성 자체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반응과 같은 것으로 구성된 것이다”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특별히 우리가 이 시편의 말씀을 보면, 여러 가지 주제가 나오는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여호와의 율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에 대한 강조가 시편에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것이죠.


그리고 누가 복이 있는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고, 누가 악한 사람인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지 않는 자가 악한 것이라고 하는 그런 대조가 시편에 나오면서, 이 하나님의 율법인 이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모세 5경에 대응하는 시편에 5권의 이 책들이 정말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묵상하는 그런 내용들로 되어 있다고 하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이 하나님의 율법이 왜 중요한가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율법이 하나님을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영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눈으로 볼 수가 없어요. 우리의 손으로 하나님을 만질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교제하시는가? 어떻게 우리가 볼 수 없는 그 영적인 하나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관계하시는가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셔서 교제하게 만드시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그것이야말로 정말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영적인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거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바로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시편이 5권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일관의 내용을 보면 1번은 1편에서부터 41편까지의 내용인데 주로 다윗이 쓴 시편들이 제1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고 한다면, 의인과 악인에 대한 대조를 말하고 있는데, 이런 악인들이 판을 치고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고, 악인이 승리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께로 피하는 것이 복되다”라고 하는 그런 내용들이 제1권의 시편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2권에서는 42편서부터 72편까지가 제2권이 되겠는데, 2편에서 제2권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대적들이 공격해 오고, 그래서 대적들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상황이 있지만, 그래서 때로는 낙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절망 가운데 있게 되겠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노래하는 시편들이 특별히 제2권의 말씀 가운데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시편을 쭉 읽어왔는데 이 말씀을 이 말씀이 우리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낙망하고 절망할 때, 이런 시편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결국에는 하나님께 나아가 찬송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놀라운 축복들을 그 기쁨들을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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